2005년 11월 28일 월요일

[후보이야기 018]김동문/라경민



오늘 포탈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 환상의 복식조가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내가 배드민턴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 경기를 중계할 때는 꼭 봤는데, 그건 뭔가 둘이 아닌 하나가 분신술을 부리는 듯한 한마디로 사람을 홀리게 하는 뭔가를 보여주는 최강 복식조였기 때문에 늘 이 둘이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었다. 근데, 이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기사를 보니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은 물론, '그래, 그러니까 이 둘이 그렇게 찰떡 궁합에 환상의 경기를 보여줬지'라는 나름대로 예상했던 게 맞았서 기분 좋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두 분이 같이 금메달을 목에 건 적은 없지만, 이제 인생의 금메달을 함께 따 내시길 빕니다. 

[From naver 오픈 백과]


8년 호흡을 자랑하며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신화를 일궈낸 부동의 세계 랭킹 1위 김동문, 라경민. 그들은 한국을 배드민턴 강국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배드민턴 복식조였다. 그들이 이런 자리에 오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셔틀콕과의 인연

초등학교 4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배드민턴을 시작한 김동문은 1992년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진북초등학교부터 전주서중, 전주농림고, 원광대, 삼성전기까지 친구 하태권과 셔틀콕을 함께 해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드민턴을 시작한 라경민은 '제 2의 방수현'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드러내며 고등학교 1학년 때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이후 라경민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주봉과 혼합복식을 함께 하는 행운을 잡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까지 올랐고, 김동문은 5년 선배였던 길영아와 짝을 맞춰 결승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선수들끼리 만난 결승전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동문-길영아 조가 박주봉-라경민 조를 누르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적과의 동침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박주봉은 은퇴를 하고, 쓰디쓴 패배를 겪은 라경민은 단식을 하려고 했으나 "나랑 짝을 이룰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김동문의 설득으로 두 사람은 함께 혼합복식을 하게 되었다. 이후 김동문-라경민 조는 세계랭킹 1위를 달리며 8년 간 14개 대회 연속 우승과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한국 배드민턴 계의 간판스타로 불리었다. 무뚝뚝한 성격의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를 격려하며 오누이처럼 아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올림픽과의 악연

두 사람의 올림픽 금메달은 너무나도 확실하였다. 금메달 후보 0순위라는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불구하고, 김동문-라경민 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중국의 장준-가오링 조에게 뜻밖의 일격을 당해 8강에서 탈락했다. 은퇴까지 생각했던 라경민을 김동문이 "한번만 더 해보자"며 설득했다고 한다. 시드니의 악몽을 되살리지 않도록 두 사람은 더욱 열심히 훈련을 했다. 하지만 악몽은 계속되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8강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던 덴마크 조에게 충격의 완패를 당했다.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부담감을 느꼈던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확신했지만 그들은 올림픽 금메달과는 지독하게도 인연이 없었다.

혼합복식 이후 김동문은 남자복식에서 하태권과 함께 이동수-유용성 조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했고, 라경민은 여자복식에서 이경원과 함께 금메달에 재도전했지만 중국이라는 벽에 막혀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김동문은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과 아테네 올림픽 남자복식에서 두 차례나 금메달을 땄지만, 라경민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고서도 한 번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본 적이 없었다. 올림픽에 3회 출전했지만 라경민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뿐.

김동문은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학업을 위해 은퇴를 선언했고, 라경민은 CT검사 도중 쇼크를 일으켜 선수 생활이 힘들 정도로 심신이 지쳐 은퇴를 선언했다. 그녀와 함께 혼합복식에서 막강 플레이를 자랑했던 박주봉과 김동문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라경민은 건강 때문에 태극마크와 이별하지만 소속팀 트레이너로서 국내무대는 계속 뛰겠다고 했다...



세계 랭킹 1위의 화려한 경력

*1997년 미국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7년 홍콩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7년 중국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8년 일본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8년 스웨덴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8년 전영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8년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8년 제13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 혼합복식 1위

*1999년 삼성 코리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9년 그랑프리파이널즈 혼합복식 1위

*1999년 스웨덴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9년 일본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3위

*1999년 제 11회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9년 싱가폴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9년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1999년 그랑프리파이널즈 혼합복식 1위

*2000년 삼성 코리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0년 전영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0년 스위스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0년 말레이시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1년 삼성 코리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1년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2위

*2001년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2년 전영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2년 스위스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2년 눈높이 코리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2년 일본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2년 YONEX Sunrise 싱가폴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2년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일본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3위

*2003년 눈높이 코리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제13회 세계개인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싱가폴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인도네시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말레이시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네덜란드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덴마크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독일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홍콩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3년 대만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4년 스위스오픈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4년 전영오픈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4년 눈높이 코리아오픈 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2004년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1위


박주봉, 방수현 등등... 한국 배드민턴 계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경험이 있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곁에는 올림픽이 아니어도 다른 무대로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자존심을 지켜온 골든 듀오가 있었다. 184cm, 175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8년 간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만들어진 특유의 노련미로 세계를 주름잡았던 세계 최강의 환상의 복식조 '김동문-라경민'... 올림픽과의 인연이 적긴 했지만, 그들은 세상의 어느 금메달리스트보다도 뛰어난 배드민턴 계의 지존이며 진정한 챔피언이다. 최강 콤비를 자랑하는 그들의 실력만큼은 수천 년이 흘러도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2005년 11월 21일 월요일

[후보이야기 017]Chipper Jones



본명은 Larry Wayne Jones. 

진정한 Brave라고나 할까...

팀을 위해서 2006년의 1700만달러, 2007, 2008년의 150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팀과 재협의하여 1100만달러로 줄이고 대신 팀이 선택하기로 한 2009년 이후 팀의 옵션 사항(450타석 출장시 자동 발효, 그러나 부상으로 절절매던 올해도 432타석을 채웠으므로 거의 발효된다고 봐야...)을 없애고 그냥 2009년까지 계약 연장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팀 연봉서열 3위 내의 그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연봉을 줄인 건 FA로 떠나는 유격수 Rafael Furcal이나 팀의 골치거리인 마무리 투수 영입을 위해 재정문제로 힘들어하는 팀에게 유용 자금을 만들어주겠다는 의도. 그리해서 내년에도 ML 최강팀의 위용을 지키게 만들어주겠다는 뜻. 

정말 이런 자세야말로 Franchise Star라 불리는 선수가 보여줄 자세가 아닌가 싶다. 물론 돈이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Chipper가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Braves를 사랑하고 또 Fan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래라고나 할까

Boras 사단이면서도 팀에 남겠다며 적은 연봉(물론 다른 사람 대비 고액)을 감수한 Andruw와 함께 이 Jones Bros는 ATL의 실력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팀의 훌륭한 Leader가 아닐까 싶다.

90년 1라운드 1번 픽(Atalanta가 이때 까지는 꼴지는 도맡아 했음)으로 뽑혀서, 원래는 Klesko 등과 같이 데뷔를 했어야 했지만 부상 때문에 유격수 자리도 포기하고 3루수로써 93년 시즌 말에 40인 로스터에 끼어서 메이저 리그를 데뷔했다.

실제 ML 데뷔라고 할 수 있는 95년에 .265의 타율에 23개의 홈런을 치며 차세대 Franchise Star를 노리면서 팀의 90년대 유일한 World Series 우승을 이끌었다. 96년 홈런 30개로 슬러거로 변모하다, 투수의 천국이라 불릴 수 있는 Turner Field로 홈 구장이 이전하면서 23개의 홈런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98년에 다시 홈런 34개, 그리고 99년에는 45개의 홈런, 110 타점, 도루 25개로 National League MVP까지 거뭐지며 League 최고의 Switch Hitter임을 입증한다.

가장 완벽한 스윙, 타격자세를 가졌다는 그인데... 6년 연속 3할, 8년 연속 100타점 등의 활약을 보이며 ATL이 NL 동부 최강팀으로 군림하는데 타력으로 받혀 주었지만...04년부터 계속 되는 부상으로 약간의 부진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홈런 20개 이상은 치지만 말이지..

그가 가장 사랑스러운 건 NY Mets(Joy는 Sucks라고 했다..^^:)와의 대결(혹자는 라이벌전이라고 하지만 그냥 그건 Mets 팬들의 착각 ^^:)만 벌어지면 유난스런 NY 관중을 침묵 속에 잠기게 하는 짜릿한 홈런을 자주 날려준다는 사실. 그가 얼마나 Clutch-Hitting에 강한지는 온갖 Hightlight Reel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사실.

아무튼 Chipper 형님, 당신은 영원한 저의 우상이십니다요. 

Go Braves!!!